기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전쟁의 승패를 가르고, 왕조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며, 문명의 방향을 바꿔온 강력한 변수였습니다. 엘니뇨, 나이테, 화산폭발 같은 자연현상이 어떻게 인간 사회를 흔들었는지, 그리고 그 영향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 증거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엘니뇨가 결정한 전쟁의 승패
엘니뇨는 열대 태평양 바닷물 온도가 상승하는 기후 변동으로, 보통 4년에서 7년 주기로 나타납니다. 적도 태평양 지역에는 평소 무역풍이 지속적으로 불어 뜨거운 물을 서태평 양 쪽으로 밀어냅니다. 그 결과 인도네시아나 호주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페루와 에콰도르 쪽은 바닷물이 차가워서 가뭄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엘니뇨가 발생하면 무역풍이 약해지면서 서태평 양에 모여 있던 뜨거운 물이 동태평양으로 되돌아갑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와 호주는 바닷물이 차가워지며 가뭄과 산불이 발생하고, 반대로 페루와 에콰도르는 극심한 홍수 피해를 입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500년 주기로 나타나는 장 주기 엘니뇨입니다. 이 현상이 발생하면 떨어진 해수 온도가 한반도와 일본 쪽으로 전달되는데, 바닷물 온도가 낮아지면 열 에너지 전달량이 줄어들고 수증기도 덜 전달되어 가뭄이 옵니다. 실제로 3300년 전, 2800년 전, 2300년 전에 이러한 가뭄이 발생했고, 그때마다 동아시아에서 사회 변동이 일어났습니다.
13세기 여몽전쟁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당시 몽골은 칭기즈칸의 지휘 아래 강력한 정복 전쟁을 시작했는데, 나이테 분석 결과 1200년대 초반 몽골 지역의 강수량이 증가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초원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말을 먹일 풀이 풍족해지면서 칭기즈칸은 전쟁을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같은 시기 고려는 장 주기 엘니뇨의 영향으로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습니다. 고려사 기록을 보면 "큰 기근이 들어서 굶어 죽은 자들이 길에 널렸다", "겨울인데 눈이 오지 않고 기근과 전염병이 연달아 일어나서 시체가 길을 덮었다"는 참혹한 상황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몽골이 기후적 버프를 받은 반면, 고려는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전쟁의 승패를 기후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인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기후가 그 원인 가운데 중요한 하나였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나이테가 밝혀낸 과거 기후의 비밀
나이테는 과거 기후를 정확하게 복원할 수 있는 놀라운 도구입니다. 나무에 코어를 삽입해 안쪽 목편을 뽑아내면 나무를 죽이지 않고도 나이테를 분석할 수 있습니다. 현미경으로 나이테 두께를 측정하면 연하게 보이는 부분은 여름철에 만들어진 것이고, 진하게 보이는 부분은 겨울철에 형성된 것입니다. 여름에는 강수량이 많아 두껍게 자라고, 겨울에는 건조해 얇게 자라기 때문에 나이테가 형성됩니다.
나이테 연구의 놀라운 점은 8000년 전까지 과거 기후를 복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캘리포니아나 애리조나에는 5000년, 6000년을 사는 장수 나무들이 있고, 죽은 나무의 나이테 패턴을 살아있는 나무와 연결시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완성품을 모르는 상태에서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은 작업으로, 엄청난 끈기가 필요하지만 연대가 아주 정확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나이테 분석을 통해 조선시대 기후변화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현종과 숙종 시기에는 태양 흑점 수가 크게 떨어지고 기온도 낮아졌는데, 바로 이때 경신대기근이 발생했습니다. 1670년대 후반 조선은 엄청난 대기근을 겪었고, 현종실록에는 142차례의 기상 이변이 기록되었으며 100만 명 가까이 사망했습니다. 당시 실록 기록에는 "연산에 사는 사가의 여비 순례가 그의 다섯 살 된 딸과 세 살 된 아들을 죽여서 먹었다"는 끔찍한 상황까지 나옵니다.
그러나 영조 시대부터 상황이 달라집니다. 나이테 분석 결과 영조가 재위하던 시기부터 기온이 상승하기 시작했고, 정조 때까지 높은 기온이 유지되었습니다. 태양 흑점 수가 증가하고 화산 폭발도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조와 정조가 명군으로 평가받는 것은 물론 그들의 능력도 있었지만, 기후라는 유리한 조건이 뒷받침되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현종은 경신대기근 이후 대동법을 실시하며 백성을 위해 노력했고, "허물은 나에게 있는데 어째서 재앙은 백성들에게 내린단 말인가"라며 자신을 책망하는 교서를 내렸습니다. 이러한 실용적 접근은 18세기 실학이 도입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화산폭발이 만든 여름 없는 해
화산폭발은 기후에 즉각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화산이 폭발하면 이산화황이 대기 중으로 방출되어 수증기와 결합해 막을 형성하고, 이 막이 태양복사 에너지가 지표로 도달하는 것을 막아 지구 온도가 떨어집니다. 태양 흑점 수 감소와 함께 화산폭발이 빈번하게 일어나면 소빙기 같은 장기적 한랭기가 찾아옵니다.
영조와 정조의 태평성대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순조 시대에 접어들자 화산이 연이어 폭발하고 흑점 수는 급격히 떨어지며 온도도 급락했습니다. 기후 상황이 악화되자 탐관오리가 득세하고 수해와 전염병이 겹치면서 국가적 혼란기가 찾아왔습니다. 홍경래의 난 같은 반란이 발생했고, 호구조사 결과 인구가 약 131만 명이나 감소했습니다. 대부분 굶어 죽거나 거지가 되었거나 전염병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재앙의 원인은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의 폭발이었습니다. 이 화산은 이산화황을 144km 상공 대기로 방출했고, 전 세계로 퍼져나간 화산재가 막을 형성해 지구 기온을 확 떨어뜨렸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1816년을 "여름이 없는 해"라고 부릅니다. 기록에 따르면 6월에 전날 반팔을 입고 돌아다녔는데 다음날 갑자기 눈이 많이 내리면서 주변이 눈으로 덮이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온도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봄에서 가을로 바로 넘어간 것입니다.
중국의 왕조 교체를 살펴봐도 기후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나라가 망하고 5대 10국의 혼란기로 접어들 때,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로 교체될 때, 명나라가 청나라로 교체될 때 모두 기후가 건조했습니다. 한반도 역시 상록수 꽃가루 비율 분석 결과, 통일신라가 800년 이후 혼란기에 빠질 때, 고려-몽골 전쟁 시기, 고려-조선 왕조 교체기, 1600년대 후반 경신대기근 시기에 모두 상록수 꽃가루 비율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800년대 초반의 소빙기를 겪고 난 후 사람들은 기후를 관측하고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온과 강수량을 철저하게 관측하고 기록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자료들이 현재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연구에 필수적인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당시 영국의 템즈강은 얼어붙어 마차가 다닐 정도였고, 네덜란드의 운하도 모두 얼었습니다. 아일랜드에서는 1800년대 초반 감자 기근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소빙기 기온이 현재보다 고작 1도 정도만 낮았다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1도 차이가 엄청난 타격을 가져온 것입니다.
기후변화는 과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2007년부터 2010년 사이 시리아에서 발생한 가뭄은 지난 100년 동안 가장 심각한 수준이었고, 과학자들은 이것이 지구온난화와 관계가 있다고 분석합니다. 극심한 가뭄으로 먹을 것을 찾지 못한 농촌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면서 사회가 혼란스러워졌고, 2011년 대규모 시위로 발전해 내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도 내전이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과거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인간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증거입니다.
오랫동안 기후변화는 문명의 흥망성쇠를 가져온 여러 원인 중 주된 동력이 아니라는 의견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고기후 연구와 고고학 연구가 진행되면서, 기후변화가 과거 인간 사회와 선사시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더 적극적으로 탐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기후는 역사의 배경이 아니라 역사를 만드는 주요 행위자였습니다. 엘니뇨, 나이테, 화산폭발 같은 자연현상이 전쟁, 기근, 왕조 교체를 일으켰고, 지금도 내전과 난민 문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기후 연구는 명확히 보여줍니다. 온실가스 감축, 재생에너지 확대, 기후 관측 강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출처]
알쓸신잡 5/tvN: https://www.youtube.com/watch?v=V1z9m8BUg3o